[단독] 사무장 병원·면허대여 약국, 폐업 신고 꼼수로 5486억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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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30. 오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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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말 경기 시흥에서 2년간 운영돼온 한 정형외과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보건 당국이 경찰에 “이 정형외과 병원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된다”고 수사를 의뢰하자, 병원 관계자들이 수사를 피하기 위해 폐업 신고를 한 것이다. 비(非)의료인이 돈벌이를 위해 의료인을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만든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약국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럼에도 이 병원 관계자들이 폐업 후 잠적해 버리면서 수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됐고, 그동안 부당하게 청구해간 건강보험 요양급여 3억5000만원은 회수하지 못했다.

29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사무장병원·면허대여약국 운영 혐의로 수사 의뢰됐다가 경찰 수사 도중 폐업 신고를 한 병원·약국이 2014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265곳이다. 이 중 122곳(46%)은 증거 불충분으로 결국 내사 종결되거나 불송치됐고, 45곳(16%)은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167곳이 건보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해 받아간 금액만 5486억원(미회수)에 달한다.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은 항생제·수면제를 과다 처방하거나 특정 의약품 사용을 유도하는 등 과잉 진료를 통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부당 청구하는 식으로 환자 건강과 건보공단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분야 수사 인력과 전문성 보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건보공단이 사무장병원·면허대여약국으로 의심되는 곳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면 결과 통보까지 평균 11.5개월이 소요되고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수사가 1년가량 이어지다 보니 폐업으로 현장 증거물을 없애고 잠적할 수 있는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폐업으로 수사를 빠져나가려고 한 265곳 중 196곳이 수사 의뢰 9개월 안에 폐업 후 잠적한 경우였다”고 했다.

건보공단과 보건복지부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에 대한 수사 장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보공단에 이들을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권한(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건보공단 특사경 관련 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건보공단과 복지부는 특사경 제도가 도입되면 건보공단 직원의 사무장병원 및 면허대여약국 조사 전문성을 통해 수사 기간이 11.5개월에서 3개월가량으로 줄어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연간 2000억원의 건보 재정 누수 방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작년 12월 사무장병원 등에 대한 단속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건보공단에 특사경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과 의료계는 수사 기관이 아닌 건보공단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이번 21대 국회에서 건보공단 특사경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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